2012년 10월 23일 화요일

SM 여의사 1부


I. SMer로서의 나
  이 글을 쓰기 전에 우선 내 자신부터 소개를 해야 할 것 같다.
난 27세의 여성으로 키 167, 몸무게 54의 날씬한 몸매를 소유한 여의사이다.
의대를 빨리 졸업하고 인턴과정을 거치자 마자 난 곧바로 개업을 하였다.
더 의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빨리 병원을 개업하여 경제적, 사회적으로 독
립하고 싶었기 때문에 올해 이곳 부산에 조그만 병원을 개업했다.
아직 여러 가지로 많이 부족하다.
시설, 장비,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짧은 의사경력 때문에 걱정이 될 때가 많이 있다
. 하지만 열심히 해 볼 작정이다.  
난 어려서부터 SM에 관심이 많았다.
비교적 성에 빨리 눈을 뜬 나는, 정상적인 성뿐만 아니라 남녀가 사랑과 신뢰를 바탕
으로 "고통"과 "수치심"을 공유할 수 있는 SM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. 난 "돔"
과 "서브"의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.
경우에 따라서는 내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인채, 채찍, 촛불, 관장고문을 받길 원하기
도 하지만 때로는 무섭고 표독스런 여주인이 되어 남, 녀 노예를 매섭게 교육시킬 줄
도 안다. 나의 이러한 "천부적" SMer의 기질은 어려서부터 싹텄던 것 같다.
중학교 시절, 난 과외공부를 하면서 매맞기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.
그 당시 우리 과외 선생님은 모대학 학생으로 우리들에게 매질을 자주 가하였다. 특히
 그 남자 선생님은 우리같은 여학생들에게 벌을 줄 때, 엉덩이를 전부 벗기고 회초리
로 매를 가하였다. 그리고 그러한 체벌을 가할 때는 꼭 옆방에 가서 문을 잠근 채, 개
인적으로 벌을 주었다.
나 역시 자주 옆방으로 그 선생님과 함께 들어가 팬티를 무릎까지 내리고 엎드린 채
비명을 지르며 그 매질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.
하지만 그 아픔 속에 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쾌락이 숨어 있음을 알았고, 난 그 후
성인이 되어서도 내 "돔" 앞에서 기꺼이 엉덩이를 쳐들고 매를 즐긴다.
또 나는 항문에서도 쾌락을 느낄 줄 알았던 것 같다.   역시 중학교 때의 일이다. 내
가 관장을 처음 경험해 본 것은 14살인가 15살 때였다고 생각한다. 그때 난 감기가 들
어 병원에 간적이 있는데, 그 때 열이 대단히 높았었던 기억이 난다.
의사는 날 진찰하고 난 후, 간호사에게 뭐라고 지시를 했다. 그래서 주사실에서 기다
리고 있었다. 잠시 후, 한 간호사 언니가 큰 주사기에 관장액을 가득 담아 가지고 들
어 왔다.
난 그게 관장인 줄 몰랐기 때문에 간호사가 내게 큰 주사를 놓으려는 줄 알고 잔뜩 겁
에 질려 막 울기 시작했다.
그러자 그 간호사 언니는 내게 하나도 아프지 않은 주사라고 하면서,
"겁내지 마, 이 주사는 바늘도 없잖아?"
라고 말했다. 난 그때 날 웃으면서 달래주던 간호사의 모습에서 어떤 위안을 받았던
것 같다. 간호사 언니는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날 엎드리게 하고 치마를 올
리더니 팬티를 무릎까지 벗기는 것이었다.
그리고 내 항문을 왼손가락으로 아플 정도로 넓게 벌렸다. 그리곤 항문 주위에 바셀린
을 발라 관장기가 잘 들어가도록 준비했다. 그리고 나서 관장기를 내 항문에 깊숙이
박아넣는 것이었다. 처음 해보는 관장이었지만, 간호사가 항문을 넓게 벌리고 바셀린
을 ! 바! 를 때부터 묘한 느낌이 오는 것을 느꼈다. 그리고 관장액을 항문 속에 집어
넣을 때 뱃속으로 천천히 밀려들어오는 미지근한 액체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
한다.
통증도 전혀 없었던 것 같다.
이게 나의 첫 관장 경험이었고, 이때부터 난 분명하지는 않으나 항문에서 느껴지는 감
각에 눈을 뜨게 된 것 같다.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어릴 때 경험한 첫관장에서 그
무엇인가가 내 무의식에 깊이 각인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.
가만히 그 때의 감각을 떠올려 봤을 때 전 그 간호사 언니가 날 보살펴 주고 있다는
느낌을 받은 것 같다. 날 안심시키고, 내 팬티를 겁내지 말라고 말하면서 내려주고,
항문을 벌리고, 따뜻한 글리세린액을 내 직장에 주입하는 과정이 어쩌면 내가 누군가
에게 따뜻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는지도 모른다.

댓글 없음:

댓글 쓰기